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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통증 환자의 편지 II
날짜 2015-01-09

증 환자의 편지  II


 

 봉독 요법을 접하고서

 

 무엇보다도 먼저 K 선생님과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저에 관한 이야기가 만성 통증으로 오랜 세월 고생하시는 많은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월을 올립니다.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신체적 고통을 겪어 왔고, 성장하고 나서 한참 후에야 이것이 가정 생활을 억압한 가장 큰 요인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통증에 아주 예민해져 있고 그 취약성이 늘 저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주 어렸을 때에 심리적으로 느낀 고통을 서술하거나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인식하게 되었고, 매번 고통을 겪을 때마다 심한 위통을 느끼곤 했습니다.

 때로는 진찰실이나 응급실에 실려 갔지만 엑스레이나 위시경 검사를 한 후에도 그 누구도 어디가 나쁜지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여러 차례의 경험을 통해 저는 임상 치료를 주의 깊게 관찰할 수 있었고, 마침내 의사와 환자와의 게임에 관해 아주 정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소위 권위자라는 의식 때문에 환자는 이들에게 모든 것을 바쳐 최대한 협조해야 했지만 곧 이런 의학 전문가들의 엉터리 치료에 의해 병은 낫지 않고 통증은 가중되는 것이었지요.

 저는 수년 동안 분개심으로 망설여졌고 통증을 수반하는 병세를 보일 때마다 공포를 느끼곤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성인이 되었을 때 저는 건강과 복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상당히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이 쟁점을 가지고 논쟁할 만한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신체적 부상이나 질병에 감정이 깃들어 있을 때 아무도 이 예외적인 관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결국 그 질병의 완치는 부상을 당했거나 통증을 느끼는 그 본인 스스로 이겨 내야 한다는 것이지요.

 저는 모든 통증은 그 사람이 불안하거나 껄끄러운 상태에서 발산되어 나오고 이것이 내부 속에 잠재하거나, 아니면 어떤 신체적 부위에 투영되어 나온다고 확신합니다. 이것을 의사들은 암이나 관절염 등으로 부르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저로서는 안락한 것의 정반대의 상태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이제 봉독 요법을 처음 접하게 된 경위와 제가 겪어 왔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저는 약 10년 전에 번거롭고 힘든 이혼을 했습니다. 그 후로 불행의 연속인지 정확히 다섯 번 자동차 사고를 당했습니다. 이 사고들은 거의 연속적으로 8주 간격을 두고 일어났지요. 한 번은 산디에고 고속 도로에서 일어났는데 제가 어떻게 살아났는지 기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충돌 사고가 일어난 닷새째 물리 치료를 받으러 가던 중 베버리 힐스 교차로에서 마침 왼쪽으로 도는 순간 브로드웨이 쪽에서 빨간 신호를 무시하고 무서운 속력으로 달려온 차한테 들이받혔습니다.

 저는 기억 상실증으로 열흘 동안 고생을 했으며 물론 중환자실에도 1주일이나 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끔찍한 일이지만, 몇 달이 지나서야 내 오른쪽 몸이 마비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는 반년 동안 침대에 누워 지낸 후에야 내가 어떤 상태에 빠져 있는가를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물론 저는 값비싼 치료비를 물어야 하는 의료팀에 의해 치료를 받았지만 그분들은 단지 서로의 관계가 수수료와 계산서에 의해 맺어져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 듯했습니다. 저의 치료팀은 정형 외과 전문의, 신경 외과 전문의, 정신 심리  치료의, 물리 치료사 그리고 제가 나중에 쫓아낸 두 명의 내과 전문의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한때는 제 몸을 던지다시피 절망적으로 내과 의사에게 통증을 가라않혀 달라고 매달려 보았습니다. 이것이 저를 더욱더 곤경으로 빠트리는 계기가 되었지요.

 저는 여러 종류의 진통제를 복용하고 있었고, 진정제와 항우울제 중에는 욕지기를 일으키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정말로 그렇습니다. 저에 대한 임상 치료 계획표는 감사함을 느끼도록 만들려는 명상법, 항우울제, 근육 이완제, 진통제와 위궤양 방지를 위한 약물들로 짜여져 있었습니다. 제가 이런 치료는 별 효과가 없다고 항의하자 담당 의사는 얼마동안 통증약을 중지했습니다. 제가 척추 교정 전문의의 치료를 받았을 때는 장기간 냉랭하게 대하는 것으로 징계를 했습니다.

  저는 만성 통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으므로 순수 척추 교정법으로는 치유가 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기분을 바꾸어 이분들에게 협조함으로써 보조약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저처럼 심한 상태에 처해 있을 때는 강한 약을 주는 것이 통례라는 것을 확신하지만 결코 코데인 보다 강한 약은 복용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거리의 약이나 마약 등을 사용해 본 적도 없습니다. 제가 만약 아주 강한 진통제를 복용했더라면(통증이 계속되었으므로)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약물 중독 상태에 빠지리란 것과, 나 스스로를  몇몇 전문의들의 자비에 내맡기는 신세가 되든 말든 나는 무책임하고 부주의한 인간으로 전락하고 말 것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주치의들이 여러 종류의 합성제약인 탈윈, 다아본, 나프로신, 다보셋 등을 처방하는 것을 묵인했습니다. 한번은 무슨 약물의 부작용인지 내장 출혈로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습니다. 어떤 의사도 그 원인을  설명해 주지 않았고 응급실에서 위 세척 등 응급 치료를 받은  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상이 저의 담당 의사와 약물에 관한 피상적 내력입니다(여기서 아직도 활동적으로 인술을 베풀며 인류에 봉사를 하고 있는 제가 알고 있는 세 분의 아름답고 존경하는 의사들을 밝혀두고 싶습니다. 한 분은 산부인과 의사이고, 또 한 분은 위에서 밝힌 내과 의사들이 아닌 다른 내과 의사, 마지막 한 분은 저에게 새로운 삶의 의미를 부여해 준 K 선생님. 다시 한 번 존경과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습니다).

 

  

  봉독치료 후 기분이 상쾌 

 

 저는 위에서 밝혔듯이 여러 번의 교통 사고 때문에 고생했던 마비 증상에서 회복되었습니다. 이 과정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1978년에 발행된 <심리학 저널>에 실려 있습니다. 어쨌든 저에 관한 이야기는 1978년 아리조나 주 피닉스 시에서 열렸던 미국 정신 심리학 협회 연례 정기 학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가 아무 불편 없이 제 팔다리를 전부 쓸 수 있고 전혀 불구가 되지 않은 것은 참으로 기적 같은 회복입니다. 그러나 목과 양쪽 어깨, 그리고 왼쪽 팔이 계속해서 저를 괴롭혔습니다. 

 제 목뼈의 골절상이 문자 그대로 내 머리를 어깨에서 떼어 놓은 듯했습니다. 내 척추는 지팡이처럼 굽었고 몸의 균형도 한쪽으로 쏠렸습니다. 머리는 지끈지끈 아팠고 시력도 희미해졌습니다. 마음먹고 걸어도 자주 헛디뎌 비틀거렸고 끊임없이 여기저기에 부딪치곤 했습니다. 저는 롤러 스케이트 타는 것을 중단했고, 균형이 요구되는 것, 즉 인식상의 동작이나 특히 공간과 관계되는 것은 전혀 할 수가 없었습니다.

 1989년 5월, 치료약으로서의 벌 독소와 K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와 콜 씨를 만나기 전 까지는 저의 신체와 정신 상태는 무통(無痛)이나 건강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습니다. 저는 감마 글로불린 주사도 맞았고 보조약으로 콜히친도 같이 복용했고 코데인도 먹고 있었습니다. 통증은 점점 더 심해졌고 동시에 내가 기대했던 치료의 유효성과 지속성에 대한 기대도 점점 옅어졌습니다. 저의 병력에서 보듯이 저는 담당 의사가 저를 버리지 않도록 계속해서 참아 왔고, 진실로 처음보다 조금 나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아픔과 고통을 겪는 난파선에 불과했다고나 할까요. 이런 저런 경험이 제가 본론에서 벗어나 그 동안 느낀 다른 것을 삽입하도록 만든 듯합니다. 어떤 사람이 오랫동안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의사가 그 상황에서 구해 주지 못하면 흔히 그 환자는 더욱더 부가되는 통증의 희생자가 되곤 합니다. 따져 보면 건강 진료 의료진의 전부와 약사, 그리고 심지어는 출납계원까지도 부가되는 통증의 한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 모두가 화난 듯 보이고 환자를 마치 벌레처럼 대하고 흔히 의사 진찰실이나 약국에서도 무례해지고 진료를 늦추기도 합니다. 그들은 이런 희생자를 회복이 느리다는 이유로 뒤켠 난로에다 집어넣으려고 합니다. 일종의 처벌이라고나 할까요. 이것이 고통을 받는 사람을 더욱더 아프게 만듭니다. 물론 더 큰 심리적 통증의 증가를 의식적으로 느끼지는 못합니다만.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갑시다. 제가 통증이 심해 어찌할 바를 몰라 사우나에 앉아 있었을 때 저는 콜 씨의 이야기를 엿들었습니다. K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와 수년 동안 아주 비참한 상태에서 통증으로 허덕이던 어떤 사람이 봉독 요법으로 완전히 회복되었다더군요. 그것이 저를 무척 흥미있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콜 씨를 잘 몰랐지만 그에게 친절한 인간미가 흐르고 있다는 것, 내가 원한다면 그의 경험을 허락해 줄 수 있는 분인 것을 느꼈습니다. 통증 치료에 관한 한 이 세상 그 무엇도 당신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시작이었습니다.

 내 몸의 왼쪽 모든 부분이 목에서 어깻죽지까지 늘 부어 있었고 피부는 꺼칠꺼칠해 오래 된 가죽처럼 변해 있었습니다. 내 목과 어깨가 부어있는 것을 염증이라고만 부르기에는 너무 고상한 표현인 듯합니다. 내가 그 치료법에 관해 미처 알기도 전에 K 선생님의 이야기는 사우나를 흥분되게 만들었고 나는 미처 그의 이름도 알지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와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회의적인 내용 같았습니다. 이 관찰은 아주 중요합니다. 낡은 치료법이 그 시대에 가치가 없는 것이 분명한데도 사람은 사라져 버렸을 때에야 새로운 것에 대해 시도해 보려 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계속되는 통증이 이런 회의적인 생각들을 억누르고 나는 곧 콜 씨의 딸에게 전화를 하여 그가 사는 곳을 알았습니다. 진실로 내 마음 속에서는 그에게서 약간이나마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면, 혹 가능하면 통증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었으면 하고 빌었습니다.

 콜 씨와 저는 K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인내를 가지고 제 증상에 관해 자세히 들으시고 요모조모 질문하셨습니다. 그렇게 꼬치꼬치 세부 사항까지 상세히 물어보시는 데 놀랐습니다. 그리고는 콜 씨와 저에게 치료 계획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콜 씨는 참으로 인자한 신사였고 그의 이해심과 유머 감각은 치료 과정을 편안하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벌침이 아프고 따갑다는 사실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가 첫 번째 벌침을 한 대 놓고 15분 동안 기다리는 알레르기 반응 시험은 제가 지금까지 겪은 것에 비하면 어린애들 장난 같은 것이었습니다. 내 상태가 아주 나빴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1백만 대의 주사도 각오하고 있었던 바입니다.

 제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K 선생님의 엄명 때문에 처음엔 겨우 4대의 벌침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월요일과 목요일에 치료를 받기로 약속했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 7대를 맞았고 같은 주 목요일에 10대를 맞았습니다. 처음에는 저의 몸은 부서트리기 힘든 호도와도 같았습니다. 선생님께서 자세히 설명해주신 팽진(膨疹)도 생기지 않았고 부어오르지도 않았습니다. 내 느낌은 미치도록 가려운 것뿐이었습니다. 이 첫 번째 치료 후 콜 씨 가족이 휴가에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들이 휴가 가서 없는 동안 물론 계속해서 통증약을 복용해야 했지만 결정적으로 통증이 적어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가 휴가에서 돌아왔을 때 저는 보기에도 느끼기에도 좋아졌습니다. 저는 더욱 힘이 솟아났고 유머 감각도 생겼습니다. 몸무게도 줄었는데, 이것이 저를 아주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의식적으로 규정식을 취하고 짜여진 운동을 아주 부지런히 했고 무척 열심히 노력했지만 벌침을 맞기 전까지는 제 모습이 부어 뜬 것처럼 부풀어 아주 볼품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번에는 화요일과 금요일을 택해 다시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벌침은 2대씩 서서히 증가시켰습니다. 저의 병세가 호전되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좀 천천히 진전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결코 주저하거나 희망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얼마 지나서부터 화요일은 건너뛰어 금요일에 선생님께서 보내 주신 치료 도표에 따라 20대의 벌침을 맞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1주일에 한 번씩, 다음엔 2주일에 한 번씩 치료를 받았습니다. 9월에 한 번 치료를 받았고 10월에 재접종 치료를 받았습니다. 이 10월의 치료는 지금까지의 치료 중에 가장 극적인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전기 쇼크 치료와 같이 느껴졌습니다. 저의 온 중추 신경계와 호르몬 분비선이 영향을 받은 듯했습니다.

 눈이 따가워지고 충혈되었으며 침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온 몸이 뜨겁고 달아오르는 듯했습니다. 곧 이어서 욕지기를 느꼈고 설사를 했습니다. 내 손이 마치 전기 플러그 안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머리 한가운데에서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진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손바닥도 떨었습니다. 저는 아주 지쳐 버린 나머지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습니다. 전화 벨 소리에 한두 번 깼지만 너무 힘이 없어서 통화도 불가능했습니다. 4시간 후에 잠에서 깨어나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 날 아침 저는 기분이 아주 상쾌했습니다. 오랫동안 느껴 보지 못했던 이상야릇한 에너지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꿈에서나 느끼는 허황된 것은 아닌지 얼굴을 꼬집어 보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곧바로 K 선생님에게 전화를 드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세히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현상은 드물고 의학 논문집에도 서술되어 있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K 선생님은 아주 좋은 치료 효과라고 기뻐하시며 격려를 해 주셨습니다. 아무튼 이 현상 이후에 지금까지 고생했던 통증과 부어 올랐던 부위가 말끔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내 피부는 어린애처럼 보들보들해졌습니다. 마치 내 신체를 새로 찾은 듯했습니다.

 저는 이런 반응에 대한 기록이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내가 겪었던 것처럼 후천성 면역 질환이나 결핍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도 봉독 요법으로 꾸준히 치료하면 나을 가능성이 충분하리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건강 문제와 개인 병력, 개발적 병구환에 대한 관심, 건강을 위한 완치, 신체의 안녕 등이 이런 진술서를 쓰게 만들었습니다.

 

 만성 통증과 고통으로 고생한 지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신체의 안녕이 가장 가까운 시일 내에 희망적으로 코앞에 다가와 있고, 이것이 봉독 요법의 효과임을 알았습니다.

  근육 골격의 고통에 수반하여 신경과 신경절의 장애 등 부상에 의해 일어난 병력과 이것에 의한 정신 심리적 문제에 기인한 영향, 결과적으로 장기간 동안의 의학 치료, 환자나 의사의 입장에서 볼 때 잘못된 치료의 선택 등이 그 질환의 요소가 되고 그 질병이 한 인간의 지나간 과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전통적인 의료 행위와 현대 의학에도 불구하고 정말 양심 있고 실력 있는 의사를 찾아다니는 것이 사람이 건강해지는 효과적 치료법입니다. 저의 경험이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만성 통증과 고통으로 고생하는 환자를 돌보고 치료하는 예술에 있어서 저는 봉독 요법이 아주 소중하고 용기를 북돋아 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현대 과학이 인류애에 쇠고랑을 채우는 것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실패의 공포를 없애 주고, 그것의 눈가리개를 제거해 주고, 미국 의사 협회의 지혜나 인류애를 위한 미국 식품 약품 관리국의 염려보다 조금 더 먼저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의미를 기억하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 자신도 봉독 요법의 치료 효과에 대해 기술한 바 있습니다. 

 

  That is, Which is the 'be' form of the verb, the TRUTH. 

  So, To Bee, Is!!

  So be it. 

 

                                                                           1989년 11월 16일

                                                             캘리포니아 주 산타 바바라에서

                                                                                      D.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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